2016년 9월 20일 화요일

임베디드 엔지니어의 실리콘벨리 스타트업 생존기 #2. 출국말고 출근


지난 8월 24일 UA 892 항공편을 타고 출국을 하려던 나의 계획은 완전히 바뀌었다.

유학을 갔다가 최단기간 내에 졸업을 하고 OPT라는 미국의 시스템을 이용해서 실리콘벨리에서 취업을 하려던 내 계획은 말그대로 전면 취소되었다.

지금쯤 출국 수속을 밟고 있을 평행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는 부품 기대를 안고 보딩패스를 만지작 거리고 있겠지만,

무한한 다중 우주 속에서 나는 오늘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조그마한 회사로 출근을 하고 있다.

뭐,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확신이 없었던 것이지, 답안을 작성하고 시험지를 제출한 마냥 후련하기 까지 하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찌는듯한 더위. 말그대로 수육 삶는 뜨거운 수증기가 피부에 맺히는 그 느낌 그대로.
그냥 비행기 타고 캘리포니아에 한번 갔다가 올걸.. 하는 후회가 될 정도로 습한 여름.

역삼역에 내려서 지난 3개월간 다니던 회사를  '더' 다니기로 결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실리콘벨리 스타트업이니까



가장 솔직하고 간단하게 한가지 이유로 압축할 수 있는 건 이것이다.
물론, 이 회사에 다니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들이 많이 있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었고, 이 회사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보고 싶었다.
이 회사에서 내가 보려고 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는 차차 이야기를 할 때가 올 것이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물론! 조금 내면 깊숙한 곳에는 향후 1년, 2년, 3년 단위로 일어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에 대한 예외처리도 설계를 하고 있다....
가령 미국인을 꼬셔서 결혼을 해서 시민권을 딴다던가.. 응? (근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솔루션을 제안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3=3=3)

가자 이태원으로!



멕시코 카르텔 두목의 소재를 알려주는 Intel(정보원)이 되어서 보상으로 미국 비자를 요구한다던가..  (요즘 미국 범죄 드라마 나르코스에 빠져서 추석 내내 정주행 했더니 별 상상을 다한다..)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미드 나르코스 한장면).
생각해보니 이건 아닌거 같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난 실리콘밸리 소재의 스타트업을 다니고 있고, 잡념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다는 사실이다. 매일매일 역삼역에서 오피스로 걸어가는 내내 오늘 처리할 이슈들을 생각하며 스크럼 미팅때 논의할 내용들을 정리하곤 한다.







약 3개월 전 나는 방황을 하고 있었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선배들을 만나면서 조언도 구하면서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하였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오래'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에 마주해야 했다.


물론 당장 국내의 내노라 하는 대기업으로부터 인터뷰 제의가 꾸준히 들어오고는 있다. 아직까지는.
그게 내가 뭐 대단한 엔지니어라서가 아니다. 가성비가 좋고 30대의 체력이 필요할 뿐이고, 그동안 쌓아온 펌웨어 개발 노하우를 적재적소에 빠르게 써먹을 수 있는 노예가 되어 달라는 이야기일 뿐이다. 당장은 먹고 살수는 있겠지. 그게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실리콘벨리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시야가 넓어진 것은 사실이고 어떤 미래가 온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정말 유익했던 중요한 정보는 수없이 실패한 인터뷰 내용들(질문들), 그리고 지원했던 회사들의 Job position/Qualification 들이었다.
이 회사들이 어떤 사람을 뽑고 있는지 보면 답이 나온다.

어쨌든 나는 임베디드 엔지니어로서 좀 더 진보적인 방향을 택하기로 했고, 중요한 산업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필사적 이었다.

극단적으로 펌웨어 경력을 다 버리고 커리어를 180도 뒤집어 버릴까도 생각했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항상 내 기술은 수요가 있는 분야이고 필요한 것은 약간의 분야 확장, 그리고 다른 엔지니어 들과의 협업 경험이었다.

내가 주시하고 있는 큰 흐름은 IoT, 바야흐로 초연결 시대에 디바이스들의 Connectivity 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분명한건 미래는 이미 와 있다.

사람들은 거실에 아마존 에코를 사다 놓고 음악을 듣거나 날씨를 묻거나 Nest 온도 조절 장치를 제어하기 시작했고, 셀수도 없이 많은 스마트 플러그 제품들이 안방에 꽂혀 있다. 아이폰으로 불을 켜고 끌수 있다면서 IoT 혁신이라고 떠드는 광고 카피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불 정도는 손으로 끄라고 게으른 인간들아.. 잠깐, 아이폰도 결국 손으로 끄는거잖아), 아직 진정한 의미의 연결은 보이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나는 어떤 미래에 내 인생을 투자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3개월 전 무심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로켓펀치에서 한 스타트업 구인 광고를 보고는 나는 뭔가에 꽂혀서 10분만에 이력서를 정리해서 메일로 보냈다.

디바이스를 만들어 팔고 서비스를 하는, 팔로알토에 HQ를 둔 IoT 기업이었고, 한국 오피스에서 일할 엔지니어를 채용중이었다. Founders는 두명의 한국인.


솔직히 큰 기대는 안했다. 지원한 포지션은 백엔드 엔지니어 인턴이었고 나는 백엔드에 단지 관심이 많았을 뿐이고, 아는건 개뿔, 학교에서 배운 DB design 지식은 10년전에 머물러 있었고 자바는 할줄 아는데 이력서에 쓸만한 경험은 없고, nodeJS 좀 끄적여 본게 전부였다.

놀랍게도 일주일정도가 지나자 회사 사람에게서 인터뷰 제의 메일 답변이 왔고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집에서 구글 행아웃을 통해 원격 인터뷰를 했는데, 꽤나 젊은 30대 정도로 보이는 엔지니어가 한국 오피스에서 접속을 하였고, (나중에 입사해서 알고 보니 나보다 어린 20대 후반이였다!! 이 글을 보면 안될텐데 ㅋㅋㅋ) 연륜 있어 보이는 CTO(회사 정보에 있는 그분이었다)가 미국 본사에서 접속을 하였다.

CTO는 나에게 지난 이력들 중에 당연하게도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 경력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며 백그라운드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백엔드에 관심을 갖는지 물어보았다. 인터뷰 말미에는 회사 디바이스의 펌웨어 개발에 기여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내가 가진 역량을 발휘하면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같이 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에 오피스가 있는 팔로 앨토 소재의 조그마한 스타트업에 합류아닌 합류를 하였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인턴이잖아!)


3개월의 인턴 기간 동안 정말 정신없이 재밌게 일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많았고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 시야와 관점, 고정 관념, 지식 들은 완전히 뒤틀리고 뒤집히고 바뀌고 진화하였다.
이 회사의 모든 엔지니어들은 각자의 역할이 다르고 나에게 없는 능력을 하나씩 갖고 있다. 당연히 그 사람들에게 없는 능력을 나도 갖고 있다. 그렇게 우리 팀원들과 나는 협업을 통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3개월을 보냈고, 나는 아직 안짤렸다!



인턴 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CTO는 나에게 오퍼를 제안하였고 정식으로 이 회사에 합류를 권하였다.  그리고 나는 몇년간 준비한 유학 비자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진로에 대해 CTO와 상담을 하였다.

미국에서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팀을 이끌고 회사도 몇번 창업을 해 본 CTO의 조언은 현실적이고 결정적이었고,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승화씨, persistence가 중요해요.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승화씨에게 중요한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좋은 엔지니어가 되어서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 보는 거에요."




유학을 가겠다던 서태웅에게 안선생님은 우선 우리나라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되라고 했다.





좀 더 솔직해져보자. 지난 겨울에 인터뷰를 보면서 느끼지 않았는가? 거기도 다 사람사는 곳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을 하고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난 고수들이 차고 넘치는 정글인지.. 한국에서 대충 도망치듯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학위를 받고 취업을 하면 그 다음은?
'과연 나는 당장 실리콘벨리에 가서 취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쉽게도 치부를 드러내는 질문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뭐 하나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업적 같은건 아직 없었다.


뭣이 중헌디?
언제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속도보다는 방향을 택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정말 뭣이 중헌지 다시 생각해 보고 집중해서 도전을 해보기로 하였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미국 스타트업에 취업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었는데 지금 그 기회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뭣이 중헌디?'
개인적으로 2016년 최고의 유행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