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7일 토요일

Prolog : One way ticket (Season 2)


샌프란시스코 국제 공항 Arrival Terminal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은 항상 그 명성에 비해 작아 보이는거 같다.

지난 겨울 미국 여행을 갔다 온 지 반 년 정도 지났다.




며칠전 새로 바꾼 넥서스 5X가 구글 나우를 통해 비행기 스케쥴을 알려줬을때는 정말 때가 왔구나 싶었다 (구글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 메일함에 비행기 예약 스케쥴을 알리는 메일을 파악하고는 스케쥴에 등록해 놨다. 이런 생활이 이미 익숙해진 세상이다..) 

3년 정도 준비를 한 거 같은데 생각보다 열심히 준비하지 못한 거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어찌됐든 유학길에 오르기로 마음 먹은 이후로 연애도 안하고 꾸준히 목표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것 같다


인터파크 예약 메일을 분석해서 UA 892 항공편 스케쥴을 알려주는 구글 나우
Google knows everything! scary..



잡설을 좀 하자면 이번에 새로 바꾼 구글의 레퍼런스 폰인 넥서스 5X는 만족스러운 사진 품질과 함께 최고의 가성비가 장점이다.
지난번 여행때 넥서스 5를 미국에 가져갔을때 pre paid sim을 사용했는데 LTE 속도를 모두 쓰지 못해서 아쉬웠다(국내 정발은 미국에서는 3G 속도로만 사용 가능했다)
이러한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음 미국행을 위한 준비과정중 하나였다.


비행기 출발 전날에는 '드디어 내일이다.' 라고 생각하니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했던것 같다.
편도행 티켓은 생에 처음 예약해 보는 것이다.

지난 몇달간 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정리 했는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미국에 가게 됐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출발 두 달 전 까지는 기대감과 흥분 뿐이었는데 한 달 전 부터는 마냥 기쁘지 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으로 먼 곳으로 떠나서 오랜 타지 생활을 한다는 것이 걱정이 안될수가 없다. 그리고


무언가를 얻기위에 떠난 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친구, 한국에서의 편리한 생활들...
(군자동의 시세만 높은 그지같은 전셋집과 임대차 보호법도 모르는 게으른 집주인은 별로 안그립다)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이제 자주 못보는 것은 물론, 막 인연을 맺기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인연을 맺게 될지도 모를 한국의 수많은 여자 인연들을 모두 버리고 간다는 생각에 싱숭생숭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놀랍게도 마음이 너무 편하다. 
(몸은 극도의 긴장감이 풀린 뒤라 지칠대로 지쳤지만)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밟으러 가는 길에 별별 잡 생각이 든다. 

'개강 시즌이라 그런지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겠지? 이번에는 또 어떤 입국 심사관이 날 괴롭힐까? 나이 많다고 F1 비자가 수상하다고 하진 않을까? 갑자기 광화문의 미국 대사관에서 날 인터뷰한 아줌마가 또 생각난다.. 지난번 여행 때 LA로 입국할때 멕시칸 아저씨의 비꼬는 듯한 말투와 알아듣기 힘든 농담도 갑자기 생각난다.'

게이트를 나서면 렌트카 예약 장소로 가는 길 까지는 나름 익숙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나서면 지난 여행때의 기억 처럼 익숙한 풍경이 또 펼쳐지리라..  마음은 벌써 101을 달리고 있다.
에버 노트가 보이고 소니가 보이고 저 멀리 구글이 스페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나사로 부터 사들인 우주 비행장이 보이고...  6개월전 미국을 여행하면서 미리 경험했던 것이 은근히 이런 곳에서 빛을 발한다.


처음 일주일은 한인타운 근처에 에어비엔비를 할 작정이다.

에어비엔비는 정말 엄청난 서비스인거 같다.


렌트카를 이용하는 이유는 도착하자마자 할 일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날 DMV에 방문해서 운전면허 필기 시험을 봐야 한다. F1 비자 소지자에게는 입국 10일간만 국제면허증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법상 국제 면허는 사실 인정 안되지만 통상적으로 용인해 준다고는 한다. 사고만 안나면 된다. 경찰을 만났을 때는 두 손을 핸들위에 놓고 대들지만 않으면 큰 문제 없을거다)

DMV 예약은 네오님의 조언대로 최소 한달전에는 예약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9월이 개강 시즌이기 때문에 이미 산호세, 버클리, 샌프란시스코 쪽 예약은 꽉차서 9월, 10월이나 되어야 appointment를 잡을 수 있다...;;


별수 없이 입국 하자마자 시험을 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남쪽으로 1시간 정도 운전해서 가다 보면 있는 아주 낯선 도시인지 마을인지 Salinas 라는 생소한 도시에 예약을 잡아두었다. 산타 크루주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데 면허 시험 보고 구경이나 하면서 천천히 올라오지 뭐..




지난 1월 여행 때 LA에서 101을 타고 산호세로 올라오면서 찍은 텔레토비가 나올거 같은 꼬꼬마 동산이다.



지난 1월, LA에서 실리콘밸리를 향하는 101 국도변의 풍경들이 참 좋았었다. 넓게 펼쳐진 구릉에 꼬꼬마 동산들이 참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해가 지면서는 운전에만 집중했는데 아마 그 때 미처 다 못본 풍경들을 볼 수 있을것이다.




SFO에서 101을 타고 레드우드 시티, 팔로알토, 마운틴 뷰, 서니베일을 지나 산타 클라라로 향한다. 산타 클라라를 가로지르는 엘까미노 스트리트 중간에는 한인타운이 작게 형성되어 있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 마켓.. 정말 볼품 없는 지방 소도시의 상가 같이 생겼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코코호도의 귀여운 알바생은 아직도 일하고 있을까? 한국 마켓에 위치한 본 치킨은 내가 외국인 친구들도 몇번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한국 치킨은 만국 공통의 기호식품이 될거라고 자신한다.




출발하기 몇주전, 한국에서 sfkorean 닷컴을 통해 여기저기 하숙 매물을 보고 대략적인 시세와 위치를 물어보고 방문해서 계약을 하겠다고 메일을 보내두었다.

살인적인 물가덕분에 one bed private room이 750불에서 많게는 1300불까지 형성되어 있다. (집이 아니다 방 한칸이다. 주방과 화장실은 공용이다. 참고로 한국에서 강남 오피스텔에 살수도 있는 돈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합하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년에 3만달러는 쓸 듯 하다.

그나마 학비가 굉장히 저렴한 산호세의 지잡대 학교를 골랐기 때문에 이정도지...
아, 내가 어드미션을 받은 학교는 Silicon Valley University 라고.. 이름참 상업적이다. 대놓고 너 여기와서 돈내고 학위 사라고 광고하는 이름같지 않은가?
100% 유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는 University이고 나름 박사과정과 MBA도 있다.
지난번 여행때 스타트업 토스트마스터즈에서 만난 제니퍼가 MBA를 졸업한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학교 어드미션을 비롯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1년에 3학기다... 그러니까 1년 4개월이면 석사 졸업장을 받을수 있다는 뜻이다.
살인적인 물가의 도시에서 치고 빠지기 위한 전략인데 이런 1년 석사 과정이 꽤 많다. 학위 장사 한다고 실제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버클리나 산호세 주립대도 있다고 한다)

아 솔직히 말하면... 부끄럽지만 영어공부를 하다 말았다. 1년 더 준비해서 토플과 GRE 점수를 만들어서 주립대를 지원할까 했었는데, 올 봄에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학교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학비도 싸고 말이지..


뭐, 처음부터 졸업하고 OPT라고 하는 워크 퍼밋을 받고 여기에서 경험을 하는게 목표이니 큰돈 들여 명문대를 갈 필요가 없는 나한테는 최선의 선택이긴 했다.
이곳을 졸업한 몇몇 한인 분들도 만나서 이야기해 봤고 몇몇은 졸업해서 영주권 받고 잘 살고 있다.

참고로 스탠포드는 1년 학비&생활비만 5만달러, UC Berkely와 산호세 주립대는 3~4만 정도 한다. 석사 과정은 2년을 해야 하고... 캘리포니아 학비는 외국인에게 자비란 없다. 내가 박사과정을 들어가서 풀 펀딩을 받지 않는 이상..

한때는 박사 유학을 꿈꾸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별 관심이 없다.
박사 졸업 이후의 삶이 별로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거 같기 때문이다.
5~6년 간의 학업 이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미국에서 취업 하기도 쉽지 않고, 한번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한적이 있었기 때문에 두번다시 잘못된 선택은 안하려고 당분간 그 생활을 다시 경험할 생각은 별로 없다.


박사 학위는 왠만한 학문에 대한 열정 없이는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이를 먹고 병역특례를 마치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변했다.

나중에 이곳에서 정착을 하고 운좋게 먹고 살만 하면 늦은 나이에 또 도전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너무 순진했던 20대, 한때 끓어 오르던 젊은날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로망 따윈... 개나 줘버려
(한국 대학원에서의 헝그리 생활과 스트레스에 대해 나중에 언급할 일이 있을까마는 지금은 여기까지만... 그다지 좋은 기억은 많지 않다.)



바트! 대학원생 놀리지 말거라. 그냥 잘못된 선택을 한 것 뿐이야





9년동안 1억에 가까운 학비를 한 학교에 갖다 바쳐가며 (그렇다고 집에 돈이 많은게 아니다 전부 내가 대출하고 갚아가며 낸 등록금이니 자랑할만 하다) 받은 학 석사 학위와 박사 수료증이 내 20대를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조금 더 살아봐야 검증이 될거 같다.
아직까진 학교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 즐겁게 연구에 미쳐본 기억 말고는 남는게 없는거 같다.



또 징징대기 시작했는데, 뭐 아무튼 이래저래 그동안 아끼고 모아둔 돈을 절반정도 쓸 각오를 하며 유학을 결정 하고 여기까지 왔다.
실리콘벨리에 살고 있는 지인들과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서 생활에 대한 조언도 구하고, 다음주 월요일에 오리엔테이션을 참석하고 등록을 하면 나의 야매 유학생활은 시작 되겠지.



주말에는 마운틴뷰 다운타운에 가서 맛있는 걸 먹을까..?

샌프란시스코 만의 피어와 금문교를 구경할까?

아니면 지난번 여행때 신세를 졌던 네오님을 꼬셔서 귀여운 조카들과 공원에서 바베큐를 해먹을까?

서니베일 스타트업 토스트마스터즈 친구들도 보고 싶고,

건대 학우 Y 누나도 만나야지 (나처럼 박사 떄려치고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석사 졸업하고서 영주권 받고 잘살고 있는 내 롤모델(?) 이다. 미국 경기의 부흥기에 넘어간 아주 좋은 케이스.. 난 국방의 의무에 묶여서 타이밍을 놓쳤다. ㅠㅠ) 아무튼 Y누나는 나한테 너무 많은 도움과 조언을 줘서 이번엔 꼭 내가 밥을 살거다. 결국 누나가 사주겠지만.

지난번 여행때 레퍼럴을 서주셨던 고마운 분들도 한번씩 만나서 커피 한잔 대접해야지.

개강 준비와 정착 준비로 정신이 없어서 LA를 비롯한 남가주 지방의 친적, 선배, 지인들은 크리스마스쯤 찾아가야 할거 같다.


이래저래 분주한 날들이 시작 되겠지.



















여기까지가 지난주만 해도 내 계획이었다.






소리 냐고? 

사실 난 UA 892 항공편을 타지 않았다.


그동안 내 소설을 읽어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 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난 유학준비를 하며 살던 집도 정리한 탓에 기거 할 곳 없는 서울의 홈리스 인데다가, 새벽 5시에 갑자기 잠에 깨서 친척집 거실에서 이 소설을 신나게 쓰고 있다.

지금쯤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나의 미래에 대한 상상을..

그렇다고 지금까지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거짓말은 아니다. 지난주 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쯤 캘리포니아 햇살을 받으며 분주하게 입학 준비를 하고 있을거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여기저기 미국 유학 간다고 떠들고 다니며 얻어먹었는데 쪽팔려서 공식적인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미국에 가 있을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죄송합니다...ㅋㅋ)



나에게 찾아온 엄청난 변화가 최근에 있었고, 갑작스럽게 바뀐 인생의 방향에 몸과 마음이 피곤해져 있는 상황이며,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굉장히 중요한 선택이었다.


미국병에 걸린 불쌍한 일개 임베디드 엔지니어의 실리콘벨리 취업 다이어리 시즌 2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