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8일 월요일

쥬니어 개발자의 해외 취업 준비 #16 스티브 보고서

두달 만인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훨씬 지겨운 거 같다. 지겨웠던걸로 기억한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영화 두편을 연달아 보고 한국에 가서 할 일들을 작성하면서 맥주를 한캔 마셨더니 취한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을 아직 못봤는데 고맙게도 기내에서 이륙하자마자 방영해 준다.
한국인 성우가 대사를 말할 땐 좀 집중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집에가는 비행기가 밀레니엄 팔콘 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쟤 좀봐  츄이, 집에 가고 있어’









그럼에도 이륙할 때 샌프란시스코 만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벌써 그리워진다.



한국에 가면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다.
백수니까 취직해야지 지난 두달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얻은 데이터는 앞으로 뭘 하면서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지표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플랜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마무리 블로그 글이 많이 늦었다.


우선 이번 여행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는 못해서 상당히 아쉽다. 그럼에도 얻은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생각지도 못한 인터뷰 경험들은 내년에는 취업할 수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을 심어 줬다.




그러면, 이번에 왜 실패를 했니?
이번에 뭘 배웠니?

1.
일단 쥬니어 레벨에서는 아무래도 비자 스폰서를 잘 안해준다.
거금을 들여서 스폰서를 한다는 이야기는 이 사람이 꼭 우리회사에 필요합니다.. 라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경험과 실력이 뛰어난 시니어 레벨 엔지니어를 데려와도 모자랄 판에 처음부터 쥬니어 레벨이나 엔트리를 데려오지는 않는다. 애초에 H1B의 취지가 (미국)자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인력을 해외에서 조달하기 위한 비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원래 플랜A 였던, 유학을 가야 할거 같다.
애초에 날로 먹어보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학교를 가기 싫으면 한국에서 경력을 몇년 더 쌓고 시니어 레벨에서 도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나는 몸이 근질근질해서 그건 못할거 같다.




이미 미국병이 들대로 들었다.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과일과 고기가 그립다. 이거 생각보다 큰 이유다. 그리고 미국의 몇몇 친구들과 약속을 했다.


또 나이를 먹으면 몸이 더 무거워 진다. 
한 살 이라도 젊을 때, 한명이라도 딸린 식구가 없을 때 도전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내가 가진게 시간 뿐일때 말이다.

잡스형이 그랬어



2.
인터뷰를 보면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직군에서 어떤 회사들이 어떤 포지션을 열어두고 있는지, 어떤 인재를 찾는지 쭉 보아 왔는데 열려있는 포지션들이 내가 한국에서 경험하고 쌓아온 기술들과 경험들과는 뭔가 알 수 없는 괴리감이 있었다.

일단 여기서는 미묘한 기술 트렌드의 갭(gap)이라고 해두자.

한국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분야, 특히 전통적인 제조 분야는 빠른 기술을 적용하기 보다는 안정적이고 검증된 것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항상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회사의 일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실리콘벨리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가치를 만드는 기준이 당장 1~2 quarter 내지 1 year 내의  profit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을 내다보고 얼마나 임팩트를 내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 돈을 벌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누군가는 그럴만한 여유와 버틸 수 있는 자본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만 내가 봤을 때는 기업 문화와 뛰어난 리더쉽, 그리고 뛰어난 인재가 모이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온 것이 큰 몫을 한다. 돈한푼 없는 스타트업도 아이디어만 좋으면 얼마든지 투자를 받을수 있잖아?)

그래서 한국과 실리콘밸리 사이에는 2~3년정도 기술적, 문화적 갭이 존재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글이 길어지니 나중에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뭐가 문제다... 라고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한국에서 예전 기술, 예전 코드만 쳐다보면서 경력을 쌓다보니 인터뷰에서도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다.

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누군가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 보고 있는 코드가 2~3 년전에 시작했던 프로젝트의 연장선이라거나, 설계한지 5년이 넘은 플랫폼이라면 그건 경력에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큰 회사일 수록 경력이 짧을 수록 주도를 해서 새로운 것을 해볼 기회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가령 내가 인터뷰를 본 회사중 하나는 임베디드 디바이스에서 Qt나 OpenGL을 사용해 본 경력을 굉장히 가치있게 봐줬는데, 나는 실무가 아닌 취미나 개인 프로젝트로만 접해본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인터뷰에서 임팩트를 크게 주지 못했다.
리눅스에서 native 코드를 짜던 것이 업무의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기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기본 백그라운드와 전통적인 기술들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기초도 물론 탄탄해야 한다.


요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기여를 할 수 있는 가장 핫 한 분야는 무엇일까?

모바일, IoT, 전기자동차, 의료기기, 드론(로봇) 등의 많은 회사들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수요가 많은데
특히 IoT 분야 스타트업들이 상당히 많이 증가하고 있고, 전기자동차 산업의 회사들의 포지션은 상대적으로 많이 없고 노련한 시니어들을 많이 찾는다. 하지만 자동차 분야에서 착실히 경력을 쌓은 사람이라면 꽤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드론과 로봇 관련 산업은 아직까지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하진 않았지만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전기 자동차 분야와 함께 지속 주시해야 할 차세대 산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조만간 모바일과 소비가전이 주를 이루던 영역이 로봇과 전기 자동차 산업이 앞지를 날이 오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의료기기는 잘 모르겠다. 그냥 꾸준히 산업 수요는 있는데 아마 의료 로봇 쪽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있어보인다. 관심도 없고 지원도 안해서 나는 어떤 회사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기술적인 세부사항으로 들어가면 커널, 디바이스 드라이버, 펌웨어, RTOS, 임베디드 리눅스, 무선 통신(wifi, bluetooth 등), 멀티미디어 처리 등의 실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찾는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소비가전 분야에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수요가 큰 이유이다.
아무튼 실리콘벨리의 산업 트렌드는 항상 빠르게 바뀌는데 그 트렌드를 받쳐줄 수 있는 기반 기술과 신기술을 잘알고 있는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항상 최고조에 이른다.


경력도 짧은데 트렌디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지 못한 것이 나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했던 일 중 가장 잘한 일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만둘 것 같다. 변화를 위해서는 무언갈 그만두어야 한다.



3.
그래도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분야의 인터뷰 스타일을 어느정도 파악했다.
여기에 오기 전에 코딩 인터뷰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군에서.. 특히 경력직이라면 코딩 문제는 알고리즘 보다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및 컴퓨터 구조, 프로그래밍 기초 등에 집중되어 있다.
가령 포인터 사용이라던가 메모리 주소 접근, 레지스터 제어 등을 위한 코딩 문제를 많이 묻는다.

문자열 처리나 트리 탐색 같은 알고리즘 문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시스템 소프트웨어/임베디드 소프트웨어/펌웨어 엔지니어 포지션의 인터뷰에서는 거의 그렇다.

분야를 막론하고 시스템 아키텍쳐 설계에 대한 문제들은 공통적으로 잘 묻는거 같다.
어떤 시스템을 설계할 때 어떻게 할 것이고 어떤 문제점이 예상되고 어떤 기술을 쓸 것이고 하는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밑천이 많이 드러난다. 그래서 실전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다.


앞으로 내가 계속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포지션을 찾을지, 아니면 커리어에 변화를 줄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분야에서의 산업 수요, 인터뷰 스타일, 회사들, 트렌드 등을 꽤나 파악을 한 것 같아서 꽤 의미 있는 경험을 한 거 같다.

내년 이맘때 쯤 나는 말 그대로 실리콘벨리에서 거주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 소망한다.


회사 다니면서 새벽에 토플 학원을 다니고, 주말마다 토스트마스터즈 클럽에 나가서 열심히 영어를 토해내며 갈고 닦은 영어실력과 그다지 높진 않은 영어점수를 들고 학교문을 두드려 보려고 한다.

(새벽에 학원을 다니며 회사를 나갈 땐 위장병도 얻었다. 위장을 내주고 토플점수를 얻은 셈이다. 사실 위장병은 회사 때문에 얻은거 같지만..)


블로그 초반에 나의 플랜 A는 원래 유학을 가는 것이라 언급한 바가 있다.
지난 두달간 꽤 괜찮은 모험을 했고 이런저런 작전을 세워가며 적진을 뚫어보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은 초심으로 돌아가서 남은 미네랄을 탈탈 털어 정석 빌드를 타야할 것 같다.

망할 스탠포드는 못가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서 못간다는 핑계로 내 부족함을 가리자) 실리콘밸리에 학생 신분으로 체류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석사 졸업을 하고 난 후면 OPT라는 아주 좋은 취업 비자가 생긴다.
최근 굉장히 중요한 법이 하나 개정되었는데 OPT extension을 17개월에서 24개월까지 늘려줬다고 한다.
즉, 36개월을 OPT 비자 만으로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취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체크하자!


그러면 내년쯤에는 눈치 안보고 맘껏 인터뷰를 보고 무난히 취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일단  한학기가 지난 이후에 CPT라는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인턴 식으로 일주일에 20시간 정도 일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경력이 있다면 인턴 자리를 얻는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졸업을 하고 나면 OPT가 비로소 주어지는데, 내가 진학하는 학교는 1년만에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다.
이미 한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나는 상당히 많은 과목들을 waiver(학점 면제) 신청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남는 시간에 알바도 뛸 수 있다.

20대에는 시야가 좁아서 유학을 가려면 금수저가 아니면 힘든줄 알았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돈이 많이 없어도 유학을 갈 수 있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엔지니어에게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도 이 순간에 내 메일함에는 리크루터들의 연락이 오고 있고 미국을 떠나기 전날까지 리크루터와 통화를 했을 정도다.)
캐쉬잡을 뛰어도 밥값은 벌 수 있는 곳이다.

그냥 혼자 미국에 가서 1~2년 살아보고 싶으면 어디 아무데나 어학원 등록하고 영어공부 하면서 미국에서 체류하는 도중에 불법 캐쉬잡이라도 뛰면 된다.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말이다.
다만, 불법이니 리스크는 인지하면서 잘 알아봐야 하고, 수요가 많은 분야여야 한다. 가령 모바일 엔지니어(아이폰/안드로이드)나 웹 개발(프론트/백엔드/풀스택), 또는 만인의 언어 자바 등등... (한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였지 아마)



잡설(이지만 중요하다)을 하나 더 하자면,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민자 엔지니어에 대한 논의가 항상 뜨겁다.

미국의 한해 엔지니어 졸업생 수는 9만명 정도 된다. 하지만 산업에서 요구되는 엔지니어의 수요는 연간 30만명이다.
그 갭을 이민자 엔지니어들이 메꾸고 있고,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없이는 실리콘벨리도 미국도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마크 주커버크 같은 경영인들이 꾸준히 H1B 비자 쿼터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http://business.time.com/2013/04/12/why-mark-zuckerberg-is-pushing-in-immigration-reform/










미국 내 보수파인 공화당과 그 지지자들은 자국민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는 알 수 없는 이민자 혐오 때문에 두 의견은 항상 충돌하고 있다.



근데 Native American 들은 궂은일을 잘 안하려고 한다. 그래서 공대를 상대적으로 많이 안간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이민자들이 미국의 IT 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서 병역특례 같은 노예제도로 차세대 노예를 육성하면서 버티고 있는 현실이긴 하다)


아무튼 미국도 공돌이한테 혜택을 많이 준다. 그래서 이공계 유학생은 학교만 졸업해도 최대 3년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뭐, 제일 쉬운 방법이다)


주위에 또는 SNS에 인터뷰 및 오퍼를 받았다고 공유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분들도 대부분 오랜시간 인내하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친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에서 상당한 경력과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스카웃되어 간 영웅담이 대부분이다. 대다수는 조용히 유학생활을 마치고 취업한다.
게다가 그런 영웅담은 몇 개 없다는 사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치밀한 작전을 세워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이 기승전유학 으로 샜는데, 아무튼 이번 시즌 짧은 취업 여행기를 이쯤에서 마치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한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왔는데, 바로 어떤 경험을 하든 즐기자.. 였다.
그리고 나는 이 여행을 아주 잘 즐긴거 같다. 이렇게 후회 없는 여행을 한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오래전부터 확실한 목표 의식을 갖고 준비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놀기도 잘 놀고 먹기도 잘 먹고 하고싶은 인터뷰도 실컷 해봤다.


누군가의 눈에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 인생은 변수 투성이다. 가만히 앉아서 지금 하는 일이나 하며 묵묵히 살 수는 없다.

I am not a tree 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항상 움직이고 변화를 주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변화가 나중에 어떤 큰 임팩트를 가져올 지 알 수 없다.

그것을 깨달은 여행 이라서 더 갚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보잘것 없는 블로그 글을 읽고 격려와 응원을 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시즌 2를 기대하셔도 좋다.



앞으로 한국에 있는 동안 뭐할거냐고?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