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7일 수요일

쥬니어 개발자의 미국 여행기 #6 Silicon Valley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 사옥 입구


실리콘 밸리에 왔다.

막상 와 보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캘리포니아를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다고 벌써 풍경에는 익숙해진 것 같다.


이 곳 실리콘 밸리는 북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 로부터 남쪽으로 산호세에 이르기 까지 커다란 Bay를 따라 벨리(골짜기) 지형이 감싸고 있다.

이곳 밸리 안에서 1호 스타트업인 HP가 창업을 한 이후로 수많은 반도체, 테크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도시 전체가 전 세계의 IT산업을 견인하는 대규모 테크 단지로 발전을 하여서 실리콘 벨리가 되었다.


내가 묵을 숙소는 서니베일과 쿠퍼티노를 가로지르는 280 프리웨이 근처에 있다.



환상적인 날씨의 서니베일의 한적한 주택가
저기 내 애마 렌트카인 Ford Fiesta가 주차되어 있다.



내가 인복이 많다고 했던가?

이번에도 한번도 만나 뵌 적이 없지만, 지인의 지인, mutual friend라고 할 수 있는 Neo 님께서 나의 목숨을 구해주셨다.
7번째, 생명의 은인 이시다... ㅠㅠㅠㅠㅠ

공짜로 신세를 지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이미 알고 있는 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심리적으로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


도착한 날 밤 네오님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저녁밥도 차려주셨다.
조금 후에 네오님의 와이프분이신 Liz님이 들어오시고 우리는 다같이 맥주를 한잔 하면서 첫 인사를 나누었다.

네오님 가족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두 딸이 있는 4인 가족이다. 이 곳에서 4인 가족의 생활을 옆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굉장한 행운이었다. 나중에 나도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된다면 이런 모습일까, 벌써 김칫국부터 마신다.

귀여운 두 아이는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쑥스럽게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환영 선물이라고 연필과 사탕을 하나씩 줬다.
음.. 나도 딸을 낳아야겠다(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아이들은 영어를 빨리 배운다. 이곳에 온 지 몇개월 만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어울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반면 부모님들은 여전히 language barrier 가 크다고 하신다 ㅎㅎ  간혹 두 딸들이 부모님들한테 단어를 가르쳐 주거나 발음 교정을 해주기도 하는게 신기할 정도이다.

한국에선 해본 적 없는 운전 강행군에 녹초가 되어서 다음날에도 나는 어디도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쉬면서 이곳에서 무엇을 할 지 계획을 세웠다.





일단 여기에서 meetup.com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내 주위의 수많은 테크 밋업과 Fair 정보들을 볼 수 있다.

양적으로는 일단 서울보다는 훨씬 많은 듯 하다.
나는 관심 있는 밋업이나 페어등을 등록해 두고 여행 일정을 짰다.


내 계획은 이렇다.


일단 한국에서 이력서를 넣고 온사이트 인터뷰까지 따는데에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직접 오프라인으로 부딪히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물론 온라인 지원도 끊임없이 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상 방구석에 앉아서 링크드인만 쳐다볼 필요는 없다.
직접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지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와 생각을 듣고 대화를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한계를 알 수 있고 나의 장점을 알 수 있고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엔지니어인지, 아니면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인지.




이틀을 연달아 쉬면서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고는, 둘째날 밤 네오님의 또 다른 지인이신 H님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았다.


H님은 네오님의 예전 직장 동료이다. H님도 수년전 이곳에 올 때 나와 비슷한 시기(1월)에 오셨다고 한다. 나처럼 몇 개월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한 것도 아니고 무작정 이곳에서 구직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H님 본인도 그 당시에 정말 대책이 없이 무모했다고 하시며, 나를 보니 옛날의 자신 같다고 하신다. 마지막에 이곳에서 단 두번의 인터뷰를 땄는데 그 중 한 군데에서 오퍼를 받아서 벼랑끝에서 취업 비자를 받으실 수 있었다고... H님의 집도 4인 가족이다...;


진심으로 이곳에 가족을 데리고 와서 정착을 하신 분들은 존경 스럽다.
나같은 홀홀 단신의 싱글은 솔직히 잃을 것도, 지킬 것도 없다. 오히려 무엇을 하든 얻는다.

이 분들이 이렇게 필사적으로 이주한 이유는 간단하다.
엔지니어로서의 생존,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서는 40대 이후가 넘어가면 매니저->임원 테크 트리를 타지 않으면 회사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기본적으로 한국 회사들은 인건비가 싼 신입과 2~3년차 개발자들을 많이 데리고 부려먹기를 선호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한국에서 솔직히 제일 잘 팔릴때다(가격이 싸니까). 그런데도 이곳에 와서 벌써부터 기웃거리는 이유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내 커리어를 오랫동안 쌓아가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이와 출신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새로운 기회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와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내가 정말 많이 느낀 것은 오히려 한국에서 잘 느낄 수 없었던  '정'이다.

이곳에 이주를 해서 정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같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물심양면 으로 도움을 주셨다.


어릴때 뵈서 기억도 없는 이모님,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된 LA의 K님과 샌디에고 K님, 친구 A, 한번도 뵌적이 없는 어바인의 선배 J와 E, 네오님, H님..


친구 A 를 제외하곤 한번도 본적이 없거나 기억에 없는 분들 뿐인데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혜를 입었다.

다들 하는 말들이 본인들도 이곳에 와서 정착을 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 때문이고 본인들도 그렇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어메리칸 드림은 애초에 없었고 나도 오기 전부터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정착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이곳에 오자마자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동네를 둘러볼 겸 차를 몰고 나갔다.

서니베일에서 남쪽으로 몇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쿠퍼티노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스팟이라면 당연 애플이다.

나름 소심한 애플빠에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을 동경하는 Nerdy한 나는 애플 사옥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현 애플 사옥

실리콘 밸리 전역은 지진대가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고층 건물을 법적으로 짓기 힘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회사들이 전부 옆으로 확장을 한다.

애플 사옥에서 동쪽으로 몇 블록 떨어진 곳에는 올해 완공된다는 소문이 있는 애플의 신 사옥 우주선이 한창 공사중이다.

한창 공사중인 우주선 모양의 애플 신사옥
지독한 구두쇠 회사라 건물도 나무로 짓는다. 
지진대라서 건물을 지을때 콘크리트를 많이 쓸 수 없고 나무로 낮게 지어야 한다.

이 지역의 주민인 Liz 님은 한동안 저 건물 짓는다고 차선을 막아놔서 교통 체증이 심했다고 불평을 하신다 ㅎㅎ 동네 주민에게는 그냥 동네 공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는 산타클라라 근처에 열린 밋업 이벤트를 등록했는데 바보같은 실수를 했다.
나는 당연히 실리콘벨리 Fair라고 해서 엔지니어를 위한 잡 페어인줄 알았다.
왠걸, 갔더니 다들 정장 차림에 잔뜩 빼입고 와서는 줄을 서고 있다. 자세히 보니 Sales 포지션을 위한 이벤트였다. -_-;;;


그래서 그냥 그날은 동네를 돌면서 근처 대학들을 둘러 보았다. 동네라고 했지만 차를 타고 도시와 도시를 건너 다녀야 한다.



테슬라다 핡


좀더 가까이


더 다가가다 박으면 이번 여행 경비를 다 털어도 갚지 못할 빚을 진다







원래는 이곳에 유학을 오고 싶어했다.

왜냐하면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에게는 CPT 또는 OPT라는 워킹 퍼밋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들에게 대부분 H1B 비자를 내주려고 한다. 
비자 신청 프로세스 진행시 gap이 없기 때문이다.
H1B 비자는 4월에 신청을 하고 10월부터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 것이다.



먼저 산호세 중심에 위치한 SJSU(산호세 주립대)를 둘러보았다.
굉장히 건물들이 오래됐고 인도인, 중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SJSU 캠퍼스






입학처에 들러서 상담을 받으려고 했는데 점심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다.
별수 있나.. 나도 점심


드디어 유명한 햄버거 Habit 입성!!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다들 감자튀김이 아닌 어니언링을 주문했어야 한다고 난리다..
그리고 렌치 소스를 꼭 달라고 해야 한다고...







다음으로는 산타클라라 대학. 사립대이다. 갑자기 비가 와서 고생했지만 캠퍼스는 참 이쁘다.


SCU 캠퍼스


이곳 입학처에 방문을 해서 어드밋 관련 설명을 듣고 그동안 궁금했던 사실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Computer Science & Engineering 전공으로 석사 학위가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유학을 오더라도 절대로 같은 전공으로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딴 학위를 포기하는 각서를 써야 한다. 교수님 얼굴에 똥칠을 하는 짓이다)
그래서 입학처 직원 말로는 컴퓨터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으면 Software Engineering 으로 지원하면 된다고 한다.
Ha! Tricky!  (생물학을 전공할 순 없잖아... )

근데 한편으로는 유학이라는게 새로운 것을 배우러 오는 것인데 그냥 그렇게 비싼돈 내고 취업비자 취득을 목적으로 오는게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실 요즘 미국의 많은 사립 학교들이 work authorization 을 빌미로 학점 장사를 한다고 비난을 많이 받기도 한다.

미국이 원래 자본주의의 온상이고 돈의 노예들이 많은 타락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도착해서 제일먼저 연락한 사람은 예전 석사 시절 옆 연구실에 있던 절친 누나 Y였다.
Y누나는 내 기억으로 지금의 내 나이에 이곳으로 왔다.

중국 동포인 Y는 한국에 유학생 이었는데, 한국의 이상한 대학원 생활이 맞지 않아서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SFSU 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난 후, 이곳에서 안드로이드,  iOS 앱 개발자로 정착해서 아주 잘 살고 있다.

누나도 바로 취업 비자 받는건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유학을 추천하는 사람중 한명이기도 하다.

Y누나와 연락을 한 그 날 저녁, 나는 Mountain View (마운틴뷰) 다운타운으로 차를 몰고 갔다.
다행히 스트리트 파킹에 성공하고 누나가 알려준 이탈리안 피자집으로 향했다.


본인도 한번도 안가봤다는 Doppio Zero 피자집




마운틴뷰의 다운타운은 실리콘 같은 딱딱한 느낌의 동네가 아니다.
한껏 분주한 저녁 거리는 사람 냄새 나는 아늑한 도심이다.








피자집에서 4년만에 재회한 우리는 얼싸 안으며 격하게 서로를 반겼다.

Y 누나는 예전 학교 캠퍼스의 일들, 교수님들, 친구들 안부를 묻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쉴새 없이 떠들었다.


Y누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만족해 하는듯 했다.
일도 사람들도 좋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없다고 한다.


한국인 엔지니어들도 박봉에 강도 높은 업무 환경으로 힘들지만, 중국인 엔지니어들도 본국에서는 우리 못지않게 힘든 삶을 산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나중에 중국이나 한국으로 돌아가서 취업을 하게 될까 걱정이 된다고 한다.

실리콘밸리가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환경인건 만국 공통인거 같다. -_-;;


멀리 놀러온 동생에게 엄청난 만찬을 사줬다.
8번째 은인 ㅠㅠㅠ






식사를 마치고 Y누나는 나를 근처 커피집으로 데려갔다.
우와.. 미국에서 스타벅스 아닌 커피집은 처음 와본다.

카페에 앉아서도 서로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그 와중에 Y누나가 나보다도 더 오래 알고 지낸 선배 HS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도 몇년 만에 통화를 하는 것이다.

연신 너무 반갑고 좋다고 한다. (사실 연락 하려면 할 수 있는데.. ㅋㅋㅋ 원래 아무리 기술이 발전을 해도 각자 삶에 치여살다 보면 연락은 힘든거다)




누나는 나 보고 이력서를 보내주면 자기 친구나 보스에게 추천을 해 주겠다고 했다. 누나가 일하는 팀은 모바일 앱 개발팀인데, 이번에 포지션이 있는지 확인해 준다고 한다.

누나는 내가 미국에 오기 전부터 모바일 앱 개발로 전향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당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주 경력인 나는 선뜻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가끔 취미로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면서 틈틈이 공부를 하긴 했고, 대학원 프로젝트 말고는 실무 경력이 별로 없는데?

상관이 없다고 한다. 이곳에선.

물론 내가 그동안 해왔던 업무에 맞는 포지션으로 가면 쉽게 적응할 수도 있고 빠르게 능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서 나는 생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IT는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이다. 항상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떠오르고 많은 기술들이 사장된다. 트렌드를 쫓아야 하고 엔지니어들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하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그걸 즐기지 않으면 실리콘밸리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사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적응 못할 것도 없고, 솔직히 모바일 앱 개발도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실리콘밸리라는 동네에 와서 나는 조금 위축된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누굴 만난적도 없는데 이곳에는 전세계의 엄청난 고수들이 모여 있는 동네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어서 조금 겁을 먹은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 내가 잘하는 분야로만 찾아보려는 시도를 했지 정말 내가 하고싶은 일 또는 새로운 일을 도전 하려는 시도는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뭐 앱 만드는 것도 즐기기도 하고, 최대한 많은 인터뷰 경험을 쌓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니, 도전해 보자. 여기까지 왔는데 최대한 많은 기회를 찾아봐야 한다.

그날 저녁 나는 이력서를 Y누나에게 메일로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