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4일 월요일

Prolog - Season 04

 띵동, 똑똑똑


오늘도 어김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 한번, 노크 소리 두세번으로 잠을 깨기를 며칠째..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고맙게도 하루 3번 꾸준히 식사(라고 쓰고 먹을 '것' 이라고 읽는다)를 가져다 주는 사람의 노크 소리로 하루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


창문도 열지못하는 호텔 방에는 어제 샤워를 하느라 생긴 약간의 습기와 에어컨 바람이 섞여 한기 아닌 한기로 가득차 있었다.

암막 커튼으로 적도 지방의 뜨거운 햇살 마저 막아버려(커튼을 치지 않으면 새벽 6시만 되도 눈이 부셔 꿀잠을 못잔다) 아침마다 비염기를 달고 일어나곤 하지만 딱히 불편한 점은 없는거 같다.


주섬주섬 일어나 문 밖에 걸어둔 도시락을 받아 들고 행여 누가 지나갈까 재빨리 호텔 문을 닫았다.

커튼을 걷자 비로소 내가 여기 와 있구나.. 라는걸 느끼는 풍경이 펼쳐지는데 나름..아니 상당히 괜찮다



감금된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싱가포르의 모습



7일 동안 SHN(싱가포르는 Quarantine을 Stay Home Notice 라고도 한다) 을 안내받고 머무르는 격리 호텔의 창문 밖을 보다 보면 싱가포르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운데 차도를 기준으로 왼쪽의 오렌지색 지붕들로 덮여 모여 있는 오래된 건물들은 Bugis 지역의 핫플레이스 아랍 스트리트이다. 인도와 아랍 문화권의 식당과 펍, 기념품 가게들이 주로 늘어서 있지만, 웨스턴 스타일의 음식점들도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 전세계의 백팩커들이 많이 머무르다 가는 동네라고 한다. 2년전 이곳에 방문했을 당시 이탈리아 식당에서 혼자 피자 한판과 문어 요리를 다 해치운 적이 있다.


우측에는 금융과 무역으로 급성장한 현대의 선진국 반열에 오른 싱가포르를 보여주는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고 있다.

저 멀리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에는 수많은 무역선들이 기름 및 물자 보급을 위해 정박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 끝에 동서양의 무역 거점으로서 지리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서방 국가들이 일찌감치 왜 싱가포르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 2019년의 Bugis 아랍 스트리트
Multi cultural한 싱가포르의 특색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인구 550만 내외에 면적은 740제곱 킬로미터 정도로 체감상 부산 정도 밖에 될거 같은 이 작고 귀여운 도시국가는 말레이 반도 끄트머리 적도에 가까이 있어서 연중 무휴 무더운 날씨는 덤이다.

30대 중반이 꺾이면서 더위와 추위를 모두 싫어하게 되었는데 앞으로는 더위만 참으며 살면 될거 같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이고 (그러니까 내가 외노자로 와서 일하지) 정치 체제는 거의 독재 국가라고 하지만 나라가 너무 잘 살아서 아무도 불만이 없단다. (역시 돈이 최고시다?)
서방 국가에서는 사형제도가 있는 디즈니 랜드 라고 빗대어 말한다. 태형이 존재하는 등 아주 강력하고 무섭게 관리되고 있지만, 법만 잘 지키면 재밌는 곳이라는 뜻.


지리적으로는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인도 동쪽으로는 필리핀, 남쪽으로는 인도네시아가 접해 있다.

땅덩이도 좁고 자원도 부족하기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철수하고 남겨놓은 항구를 이용해 동서양의 무역 거점, 금융 허브로서의 휴게소 역할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섞여 공존하여 살고 있는, 있는 말그대로 exotic한 매력이 넘쳐흐르는 도시 국가이다. (도시 국가라고 하면 뭔가 애니에 나오는 판타지 같은 느낌도 들고 )



그런 나라에 살게 되었다. 2년전 여행을 할 때는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여행이 나비효과가 되어서 이곳에 오게 된것이긴 하다.

2년전 싱가포르로 여행갔을때, 예전 Awair에서 같이 일하던 전 동료 Jay님이 팀 리드로 스카웃 되어 가 있던 회사 Endowus. 그 당시에 회사 오피스도 구경하고 회사사람들과 CTO이신 주원님과도 같이 점심을 먹으며 너무나도 감사한 대접을 받았었다.


그 후 1년 6개월 만에 Endowus는 exponential한 성장을 하며 올해 초에 Light speed ventures(Lead), Samsung Venture Investment, Softbank ventures(손정의형..?), UBS(싱가폴의 대형 은행), Singtel(싱가폴의 통신사) 등으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Series A 펀딩을 받았다  Crunchbase 참고 

 그때 만약 조인 했더라면..? ㅋㅋ



이 짤이 왜 여깄지



하지만 나에겐 지금의 타이밍도 그 어떤 때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그 여행 덕분에, 그 인연 덕분에, 그 흐름에 아주 아주 아주 운좋게도, 그리고 고맙게도 전 동료의 추천을 받아 인터뷰를 보고 로켓에 올라탔다.




사장님 캄사합니다.

(격리기간 주말에 하루만에 정주행 해버린 오징어 게임에 외노자로 나오는 최애캐 알리)




아주아주 운이 좋게 또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워크 퍼밋이 승인이 되어 9월의 끝자락에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겨우 몸을 실을수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다른 나라로 long term visa로 가는 것은 누군가에겐 미친짓으로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많은 데이터들이 보여주듯 Delta 변이는 치사율이 적고 백신 접종률도 높아지고 있기에 많은 국가들이 with Corona 정책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우리는 항상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는 말을 듣지만 정작 실천을 하기는 어렵다.

모두가 몸을 사릴때 나는 조금 무모하게 움직이는걸 좋아하는거 같다. 그것 때문에 피를 많이 보는 스타일인데 결국은 그것 때문에 많이 성장해왔고, 그래왔다.


어찌 됐던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조용히 시작이 되었고,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싱가포르 외노자의 생존기.. 시즌 4를 시작해 본다
(이번엔 조기 마감 안하려나...?)




P.S.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제한적으로 할것 같다.  Endowus는 싱가포르의 자산관리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Fintech startup 이며 싱가포르 정부의 강력한 compliance를 따라야 한다.
일개 직원이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수는 없다. (잘못하면 구속되서 볼기짝 맞음)


따라서 개발이나 비즈니스 관련 이야기는 대외적으로는 C레벨의 분들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듣기로 하고, 나는 싱가폴 생존기...(라고 적고 먹방 블로그가 될지도 모른다) 적어보려고 한다.

회사가 성장해 나가며 대외적으로 발표 되는 자료나 기사 거리가 있으면 공유를 하면서 싱가포르의 스타트업과 핀테크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수 있을거 같다.



P.S. 오랜만에 키보드를 잡으니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는거 같다.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도 기록으로 최대한 남겨놓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