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4일 화요일

임베디드 엔지니어의 실리콘벨리 스타트업 생존기 #13. Pirates of Silicon Valley

11시간의 비행은 스타트업이 첫 Series A 투자를 받기를 기다리는 것 마냥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물론 적절한 비교 대상은 아니다)

이쯤 되면 영화 4편을 감상하고 머리는 아프고 맥주 한잔하고 잠을 자고 싶지만
승무원이 밥먹으라고 다시 깨워서 완전한 사육을 당하는 시점이다



잠시 고요한 틈을 타서 노트북을 펴고 비행기에서의 마지막 일기를 써 본다.


미국에서 거주해 보는 것이 단순한 재미 이상임을 느낀 것 처럼, 여행이 아닌 실리콘벨리의 오피스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experience 이상의 정신교육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실리콘벨리엔 괴물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당장 내 옆자리의 버클리에서 로봇을 연구하던 앤드류만 봐도 참 아는게 많고 (technical) 생각의 깊이가 남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능력치를 IQ에 몰빵한 케릭터 같다..) 질투심이 느껴지는건 사실이지만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이런 애들이 필드에 깔려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한없이 초라해 진다. 널린게 버클리, 스탠포드 석박사다. 실리콘벨리의 학력 분포를 보면 학사와 석박사의 비율이 비슷하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와서 졸업 후에 일하는 것도 한몫 하고, 또 그만큼 미국에서 고학력 자의 수요가 가장 많은 지역임을 반증한다.
실제로 많은 엔지니어들이 미국에 와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2~3년 사이에 슬럼프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한다고 하니, 이곳에서의 경쟁(?)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나는 나름 영어로 어찌어찌 커뮤니케이션은 잘 한다고 생각했지만 native speaker 의 기준으로 봤을때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분명히 미묘한 language barrier는 어쩔수 없나보다. 업무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문제 없지만 농담이나 미국에서 살지 않으면 바로 이해 못하는 문화, 동네 이야기, 사건 사고에 대한 이야기 들은 배경 지식이 없으면 대화에 참여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실로 점심시간에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할 때면 소외감마저 느껴진다.


성질 급하고 다소 arrogant한 성격의 소유자인 호주 출신 앤드류는 내가 말귀를 못알아들으면 굉장히 답답하다는 심정을 강하게 어필한다. 그래도 츤데레처럼 챙겨줄 때는 챙겨준다. 어쨌든 언어는 단기간에 익히는 것이 아니라 평생 꾸준히 갈고 닦는거다. 운전실력처럼.


그래도 2달동안 티격태격 하면서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정도 들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지 감이 온다. 팀웍은 이런 곳에서 빛이 나고 실제로 우리는 짧은 기간 내에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다! 이러한 갭을 줄이기 위해 회사에서 엔지니어들을 주기적으로 본사로 불러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참 고맙다.

우리 회사는 이제 갓 3년을 넘은 작은 스타트업 이고, 특히 내가 속한 펌웨어 팀은 우리 회사에서도 역사가 짧기 때문에 개발 문화도 많이 성숙하지 못했다.  작년에는 기본적인 git repository 에서의 협업에 대한 기준도 없이 서로 동상이몽 코드 커밋과 제멋대로의 리뷰가 난무하기도 하였다.

아직은 펌웨어 팀에 나와 앤드류 2명 뿐이라서 대부분은 Slack으로 sync up 하고 코드 관리를 해 나갔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파트 내에서 향후에 팀원이 늘어나고 그룹이 커질 때를 대비해 나름대로의 개발 문화를 정착시키고 온 것은 이번 출장의 큰 성과중 하나이다.

코드 리뷰 하면서도 참 많이 argue(라고 쓰고 싸웠다고 읽는다) 를 하였는데, 지나고 보면 쓸데 없는 일로 서로 자존심 세운 일도 많았던 것 같다. 한바퀴 싸이클을 돌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자잘한 문제 보다는 정말 중요한 공통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을 하게 되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technological humility(기술적 겸손)는 팀웍에 있어서 중요한 소양이다.

I stand corrected 라고 말하고 내가 모르는 것, 틀린 것은 cool 하게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은 참 넓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하고 대단하고 (좋은 의미로)미친 놈들이 많다. 그리고 지금도 이 순간 어딘가에서 미친 괴짜들은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 알기도 쉽지 않다.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 했던가

이러한 매니아 기질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아이디어에 대해서 인정해 주고 가치를 존중해 주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혁신을 주도하는 실리콘 벨리를 탄생시켰다.




한국(이라 쓰고 수도권이라 읽는다)에서는 정말 엄청난 인구가 "몰려" 살고 있는데, 다양한 볼거리 이야깃 거리가 하루가 멀다하게 쏟아져 나오고 그 소식이 퍼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다. 나는 한 때 이게 우리나라의 장점이고 자랑스러운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으로 이것이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잦은 소통과 네트워크,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가 어떤 면에서는 좋은 점도 있지만 그만큼 노.이.즈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케빈님은 출장온 엔지니어들을 모아놓고 과일을 먹여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본인은 항상 한국에 갈때마다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이 distraction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하신다. 내가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의 의견과 잡음이 너무 많이, 자주, 크게 들린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도전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야 그거 안돼

뭐야 쟤 미쳤어?

'남'들은 그렇게 안하던데

이 '기술'이 '대세'야


그런 소리를 듣고도 꿋꿋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해서 증명해 낸 애들이 에어비엔비나 우버같은 회사들이다. 에어비엔비의 창업자들은 디자이너 출신이다. 얘들이 이런 미친 사업을 시작했을 때 투자자도 니들은 미친놈들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투자한 그사람도 미친놈이다)
이 사람들이 남 눈치 봐가면서, 투자자 훈수 들어가면서 사업을 했으면 세상을 바꿀수 없었을 것이다.

마크 주커버그가 처음 페이스북을 만들었을 때 Perl 언어로 구현을 하였다고 한다. 후에 페이스북에 소송이 걸렸을 때 법원이 코드 공개 명령을 내려서 온라인에 공개를 했는데 그냥 Perl로 짠 그렇고 그런 소셜 미디어 앱이라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나 공학적으로나 그렇게 최고 수준의 시스템도 품질도 아니었고 그냥 마크 주커버그의 아이디어가 구현된 간단한 앱인 것이다.

마크 주커버그의 초창기 코드를 보고 엔지니어들이 ‘이건 뭐 별거 없는 Perl 코드인데’ 또는 투자자들이 ‘기존의 Social Network 이랑 뭐가 달라?’ 라는 노이즈만 늘어놓았다면 현재의 페이스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 형편없는 Perl 코드는 분명히 유저를 보유하고 있었고 유저가 원하는 것을 위해 꾸준히 발전해 왔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지금은 Perl 이니, PHP니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는 그런 시시콜콜한(?) 기술적인 지표 평가 따위로 평가받을 회사는 아니다. 다들 알다시피 현재의 페이스북은 valuation 100조원이 넘는 회사이다



한국 사회는 (너무 빠른 산업 성장 때문일까) 남 눈치를 보는 훈련을 하도록 교육 시스템이 구축되어 왔고 빠르게 다른 기술을 보고 습득하는 방식으로 산업이 성장해 왔다. 그래서 다른 사람, 특히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특히나 임팩트가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트렌드에 항상 민감하다. (트렌드에 민감한 것이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으로 착각 해선 안된다)

마크 주커버그 같은 미친놈들, 튀는 놈들이 주목이 아닌 왕따를 당하는 현실 속에서 얼마나 수많은 innovation의 새싹들이 짓밟히고 상처 받았을까. 나도 그런 또라이 중 하나였고 한때는 그저 머릿속에 온통 이 답답한 나라를 탈출할 생각 뿐이었다.


이제 와서 깨달은 사실은, 중요한 것은 그런 distraction 을 무시할 정도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내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끈기와 정신력, 그리고 실력을 쌓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공을 위해서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좋은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고, 그것이 스타트업이 나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필요 충분 조건이 되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이디어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실행력과 타이밍이다


믿기 어렵겠다면 아래 Bill Gross 의 TED 강연을 보기 바란다. 나는 이 동영상을 몇년전에 감명깊게 보고도 항상 이 사실을 까먹곤 한다. 그리고는 수도없이 쏟아지는 남의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내 할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The single biggest reason why startups succeed | Bill Gross



실리콘 벨리에서도 이것을 깨닫지 못한 스타트업 들은 엄청나게 많이 실패를 한다.
모든 아이디어는 위대하다.
다만 타이밍을 놓치거나, 성장 동력을 잃거나, 팀웍이 무너져서 좌초 되곤 한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 케빈님은 이것을 잊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며 나에게 과일을 먹여가며 정신 교육 강조 하셨다.


각자 가야할 방향을 잃지 말고 persistence를 잃지 말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

한국에 온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이번 Sprint 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빡빡하고 항상 정신이 없다. 요즘은 페이스북, 특히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글을 보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건강 관리를 위해 운동도 시작하였다. 하루의 대부분은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려고 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Pirates of Silicon Valley은 남들이 뭐라 하든 세상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미드 '실리콘벨리'의 한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