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2일 목요일

임베디드 엔지니어의 실리콘벨리 스타트업 생존기 #6. Business Trip To San Francisco

언젠가는 황사철 이라는 단어가 없어질 것 같은 슬픈 느낌이다.
강변북로를 달리며 저 멀리 보이는 국회의사당의 하늘은 1월 초의 쌀쌀한 햇빛을 약간의 구름과 미세먼지로 차단해서 뿌옇다.

환경오염에 가끔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최근 몇년 들어서 더욱 걱정을 하게된다.
눈이 띄게 잦아지는 미세먼지 현상도 그렇고, 작년부터 내가 다니는 회사가 핼스케어 IoT 스타트업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것도 공기질을 측정하는 홈 기기를 만들고 있으니


버스는 어느덧 서울을 벗어나 영종대교를 달린다.
저 다리를 건너면 항상 두근거린다 그도 그럴것이 이 다리가 토르가 사는 아스가르드행성에 나오는 무지개 다리 처럼 온 우주로 갈 수 있는 허브에 연결된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미세먼지와 추위를 피해 내가 갈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정확히 일년만이다



우리 회사는 주기적으로 돌아가면서 엔지니어들을 샌프란시스코 HQ로 초청하여 정신교육 미국 본사팀과 더 친해지고 executive 멤버들과 조금 더 자주 소통하며 일을 할 수 하도록 해준다.
CTO인 케빈님이 스케쥴링을 하고 적시에 본사로 소환을 당하면 각자의 역할에 대한 태스크 포스를 집중적으로 가동한다.
놀러 가는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엔지니어들은 빡세게 케어를 받는다. 예전 HQ는 팔로알토에 있었는데 지옥연수를 갔다온 사람들은 HELLo Alto 라 불렀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래도 마냥 첫 방문인 만큼 기대가 되는건 사실이다. 캬..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내보는 건가!!

(갔다 와서 빡쎈프란시스코라고 이름 붙일지 모르지만..)

보통 한번 불려 가면 6주~ 많게는 석달을 꽉 채우는데 비행기값과 숙소는 회사에서 대준다.

이번에는 놀러가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말을 이용해 현지의 친구들과 작년 여행에 만난 사람들을 한번씩은 볼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다.

회사는 에어비엔비 바로 옆에 있는 Boardman Pl 쪽에 위치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작년에 에어비엔비에 다니는 중국인 친구 Zhen을 만나러 가다가 그 스트리트를 지나쳣었고, 우연히 핀터레스트 간판을 보고 신기해 했었던 기억이...





이번에는 비슷한 시기에 같이 입사한 프론트 엔지니어, Manufacturing manager 와 같이 출장을 가게 되었다.

신나서 공항에서 셀카

아시아나 OZ212 항공편은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저마다의 여정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기 위에 탑승하였다. 9시간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영화 세편을 내리 보고 승무원이 주는 기내식량을 먹어가면서 무료함을 달랬다. 잠을 안자다 막판에 기절하듯 잠이 들어버렸는데, 아침밥 먹으라는 안내 방송에 일어나니 햇살 한줄기가 기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미 날이 밝았으리라. 밥을 먹고 얼마 후 OZ212 항공편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였다.


길고 긴 입국 심사대 줄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자니 작년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스크린에는 아직까진 오바마 형님의 환영인사가 플레이 되고 있다.(이제 곧 누군가의 불법 체류자를 향한 위협적인 경고 방송으로 바뀔듯 하다만...)


작년에 특유의 멕시칸 말투로 자기도 LA에 친구가 많다고 잘 놀다 가라던 입국 심사원은 보이진 않는다. 이번에는 심통스럽게 생긴 한 동양인 아저씨가 내 심사를 맡았다.


다른 팀원들도 심사를 위해 각자 라인으로 들어갔고... 뭐 그래도 그때까진 괜찮았다.
야마모토씨가 내 여권에서 지난 봄에 발급받은 학생비자의 흔적을 발견하기 전까진..


여행 목적이 뭐니?
샌프란시스코에 본사 방문이야.
business trip이란 거지? 얼마나 있어?
(거짓말은 안하는게 좋다) 두달.
음, 보통 출장은 2~3주인데 뭐하느라 두달이나 있냐?
이번에 신제품 개발하는것도 논의해야 하고, 원래 엔지니어들을 주기적으로 부르기도 하고..
회사 이름이 뭐야?
Bitfinder 라고해 실내 공기질을 측정하는 스마트 홈 기기...
어 니 학생비자 받았네?
응 원래 공부하려고 작년에 받았는데 안갔어.
음, 뭔가 이상한데 학생비자도 받아 놨는데 이젠 출장을 온다고? 거기다 2주도 아니고 2달이나? 좀 질문을 더 해야겠네 

(아, 꼬이네....)


'나는 당신이 저쪽  Homeland Security오피스에 들러서 질문을 좀 더 받길 원합니다.' 

라며 빨간팬으로 내 입국심사지에 표시를 하곤 매정하게 Next를 외친다.



SECONDARY  라는 글자를 따라 들어가니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몇명의 긴장된 얼굴들이 보인다. 두명의 또 다른 심통스런 얼굴의 동양인 아저씨와 백인 아저씨가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차례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내 여권을 제출하고 핸드폰으로 심층 심사를 위해 잡혀있노라고 팀원들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한 입국 심사원이 나보고 핸드폰 안집어 넣으면 뺏는다고 하길래 하릴없이 한쪽 벽 구석에 붙어있는 세계지도를 감상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른 팀원들은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어떤 질문을 또 쏟아낼까
이러다 추방 당하는거 아냐?
영영 본사에서 근무를 못할지도 몰라
아니 미국땅을 밟지 못할지도 몰라
이게 다 트럼프 때문인가
힐러리 클린턴한테 후원금이라도 낼걸 그랬나


별별 잡다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수십분이 지났는대도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고, 나같은 예비 추방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더니 어느새 방을 가득 메웠다. 한국인 중국인 인도인 베트남인이 꽤나 많이 보였다.
내 옆에 인도인 엄마품의 아이는 불안한 눈빛으로 칭얼대고 있었고 부모의 표정엔 온갖 시나리오가 보이는 듯 했다. 이게 바로 트럼프 효과인 건가... 새해부터 되는일이 하나 없다....

그냥 여권을 다시 발급 받을걸 그랬나.. 하하..


혹시나 해서 화장실도 못가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시 내 이름이 불렸고 입국심사관이 질문을 쏟아냈다.

왜 두달이나 출장을 와야 하는거야?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고, 우리 회사는 작아서 communication break down 을 줄이기 위해 엔지니어들을 자주 본사로 불러서 협업을 하고...블라블라..
근데 너 이 학교를 어떻게 알게 됐고 왜 지원했어? 
(지난 여름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보던 질문이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아 원래 유학을 가려고 했지 그런데 운좋게도 이 회사에서 오퍼를 받게 되었고 이게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유학은 포기한거야.
그 회사 이름이 뭐야?
Bitfinder.
(심사관은 들어본적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뭘 하는데?
실내 공기질을 측정하는 디바이스를 만들어. Awair 라는.. A.W.A.I.R  인터넷에 getawair.com 쳐봐
(바로 확인을 하더라)
그래 니 고용주 연락처좀 알려줘.
(나는 베터리가 얼마 없는 폰을 부랴부랴 뒤져서 회사 연락처를 펴서 보여줬다.)
이사람이 내 고용주고 CEO야 이 사람은 CTO고..



깨작깨작 번호를 받아 적더니  심사관은 나보고 자리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회사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내 신분을 확인하는게 분명하다..)

다시 내 이름을 부르더니 심사관은 내 여권을 돌려주며 가도 좋다는 말을 하였다.

정말 이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멈춘듯 하였다.....

십년 감수했다. 새해 액땜이라고 생각하자.







Welcome to United States






Luggage Claim 으로 나가니 같이 온 팀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ㅋㅋㅋ
사실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거든...


이런저런 고초를 겪고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갔다.
아, 저기 작년에 내 입국심사를 맡은 멕시칸 아저씨가 Exit이 저쪽이라며 우리를 반겨준다.!



벌써부터 빡쎈프란시스코 공항의 셔틀 열차를 타고 Rental Car 센터에 도착해서 차를 인수받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작년에 쓰던 GARMIN 네비를 꺼내 대충 붙이고 오랜만에 101을 달려 San Mateo에 있는 숙소에 도착!!



근사한 숙소. 다 좋은데 비싸다.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그리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팀원을 위해 또 다른 입국 통과 의례인 In N Out 으로 갔다.


캘리포니아 주법에 따르면 입국 시에 인앤아웃에서 버거를 먹어야 한다
그리웠던 햄버거맛




꽤나 오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Foster City에 위치한 Ranch 99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랜치 마켓은 주로 중국인들이 많이 애용하는 마트인데 한국, 일본 식료품들도 많이 있어서 이동네 사는 동양인들이 애용하는 마트이다.


흔한 캘리포니아의 농산물 물가. 계란 12개가 $2.19!!






저녁이 되자 디자이너 헤드께서 퇴근을 하고 우리 숙소로 오셔서 San Mateo 근처 Foster City에 괜찮은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런 근사한 해변 옆에서 낭만적인 식사를 하고 싶었으나 비가 오는 관계로 아쉬움을 뒤로한채 







이 타이 음식점에서 ToGo(테이크 아웃) 해서 숙소로 음식을 싸가지고 왔다










로컬 비어와 타이 음식!! 크...
피곤해서 한병 마시고 뻗었다




그렇게 좌충우돌 ... '다시' 미국에 온 첫날 밤이 깊어갔다